사물의 진상을 알기 위해선 사물의 본질을 포착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 관해서 보편적인 본질을 미리 결정해두는 것이 가능할까?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사무라이는 주인을 위해 죽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서 회사를 위해 죽는 것이 당연할까?
인간의 삶의 방식에는 공통된 기준이 결정 돼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은 받아들이는 것을 전부 대상화한다. 그 결과 의식이 자기 자신에게 향할 경우
의식은 대상화되며, 따라서 의식이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는 작용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때문에 반성에 의해 자신과 완전히 일치 되거나 자신을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상성에 함몰된 대상으로서의 자기를 넘어서고, 주체성의 회복을 외도하는 실존주의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은 단순한 윤리로부터가 아니라 이런 의식의 구조에 대한 통찰로 부터 도출된 것이다.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제기술시대의 예술의 가능성 (0) | 2007.05.21 |
---|---|
소외-사회가 ''본래적인 것'' 만들어낸다. (0) | 2007.05.15 |
[야스퍼스]한계상황/포괄자-이성의 한계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0) | 2007.02.13 |
[하이데거]현존재와 시간성- ''존재''란 무언인가 (0) | 2007.02.13 |
[하이데거] 피투성/기투- 왜 나는 이런 세계에 살고 있는가? (0) | 2007.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