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한 젊은이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질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는것 조차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서 진리에 다다를 수가 있을까?

하이데거의 답은 이랬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불안과 죽음의 자각을 통해서 진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답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발표하면서 후설에게 바치는 헌사가 있다.

그러나 이책은 후설이 하이데거를 비판한 책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 자체에 주목했다.인간을 후설의 경우처럼 세계를 구성하는 순수의식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지도;;않은 세계에 자의와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라고 지적했다.

인간은 자의와 상관없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이런 상태를 피투성(Geworfenheit)이라 이름붙이고 기분중에도 불안을 통해서 자각된다.

예를 들어 '왜 나는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왜 나는 여기에 존재하는가'라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이

이세상에 던져졌고 여기에서 절대로 도망가지 못한다는 것(피투성)을 자각할 수밖에 없다.

일단 피투성을 자각할 때 '인간은 언젠간 죽고 이 세계를 강제로 떠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죽음을 예리하게 의식하는것을 '선구적 각오성'이라 불렀다.

인간은 불안을 통해서 피투성에 직면하지만,역으로 이런 상황 때문에 최초로 존재와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획득한다.

이런 재구성하는 시도는 '기투'불린다.

Posted by 삽화가 장명진 자박자박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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