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은 현상학적 환원에 의해 의식체험의 영역을 확보하는 한편,여기서 서로 분리하기 어렵게 결합되어 있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1. 인식에 나타나는 대상과 연관된 재료의 측면2. (노에시스)의미적인 통합이 되지 않은 질료를 활성화해서 의미를 부여하는즉,대상을 의미로서 구성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작용의 측면.

 

한편 질료에 노에시스가 작용해서 생겨난 '의미'를 노에마라고 불렀다. 노에마는 재료와도 다르고 작용과도 다르다.

 

'생각할(노에시스) 때만, 나(노에마)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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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통상적인 의식작용과 관계없이 실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외부세계의 대상물이,

항상 어떤 의미로서 인간의 의식에 인식되고 있다는 점!

의식의 상관자로서 나타날 때, 모든 것은 반드시 '의미'로서 등장한다.

우리에게 인식 가능한, 즉 존재 가능한 대상은 항상 어떤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은 항상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으며,

그것에 어떤 의미 규정을 부여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식의 특성을 후설은'지향성'이라 불렀다.

의식은 지향성을 작용시키며 우리들은 의미만을 인지한다.

의미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언어만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작용'이 필요하다.

아직 언어화 되지 않은 질료에 대해서 그것에 어울리는 '작용'이 필요하고

의식은 판단작용과 판단 내용이 합해서 '의미'를 산출하는 시스템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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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상식은 '대체로' 그렇다..이지 '엄밀하게' 그런것은 아니다.

우리의 감각은 세계를 정확히 파악할수 없으며(자주 오류를 범한다.),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라고 해서 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외부세계의 관한 모든 이론은 추론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문의 절대적이고 확실한 기반을 어떻게 찾낼 수 있을까?

후설이 채택한 방법은 확실한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이 역발상이다.

우리의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하는 근심은, 우선 '물(物만물)자체'를 전제해 놓고서

이것을 우리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걸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물 자체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고,

이런 판단중지 이후에 나타 나는 세계를정확히 기술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는 물 자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가'.라는 물음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엄밀한 기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현상학이 '외부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니고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보이는 세계는 머릿속에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의식작용의 상관자로서만 외부세계를 인식한다'는 변경이다.

이렇게 학문의 확고한 기반을 도출해낸 후설은 , 이어서 이 세계의 성립 과정을 분석 하고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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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식, 이해작용의 근본적인 지평을 형성한다.

지평의 개방선은 두가지로 귀결된다.

1. 현재의 지평과의 관계속에서 과거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예: 20세기 전반에 다른 학자들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 스스로도 실패로 간주했던

'우주항'이 최신 우주론의 지평에서 재평가되고 있는 것)

2. 귀결점은 현재의 지평이 계속해서 융합되어온 지평의, 단지 현시점에서의 최종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

(예: 현재의 지평은 무(無)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영향의 작용을 받아 성립된 것이다.

'영향과 작용의 역사' 우리 행위 전체는, 과학으로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이런 역동적인

영향과 작용의 역사적 과정속에 있다.이런 자각하에서 우리의 진리탐구와 실천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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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학적 철학

과학=설명

설명은 대상을 여러 요소로 분해하는 과정을 통해 인과법칙을 발견하는것!

즉 오차범위를 설정하고, 그 속에서 대상을 유형화, 단순화함으로써

모든 대상을 반복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려 한 것이다.

설명이란 방법으론 개별적이며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삶'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삶을 외부로부터의 인과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은 삶 그 자체로서 이해해야만 한다".는 근본적인 가정을 도출해 냈다.

'삶'의 직접체험은 역사를 통해서 이해된 것이다. 딜타이에게 '삶'의 이해는 역사를 이해하는것

삶을 체험하는 방법으로서의 해석학이 요구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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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진화..

예전 두가지설
1. 만물은 신의 계획대로..목적론
2. 기계적인 법칙에 따라..테카르트의 기계론

진화론에 답하는 획기적인 생명론..
엘랑비탈
-지금의 DNA의 설명과 비슷한 설명방식
유전자에 대해서 지식이 없는 베르그송에게

이런 인식이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진화론의 (자연도태=경쟁원리)모델을
받아둘였던 데 비해, 베르그공은(잠재=현실화)라는 다이너미즘에 주목했기때문
이런 관점에서 목적론과 기계론이라는 대립되는 입장을 질적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파악
양자(목적론/기계론)를 무력화 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엘랑비탈
생명 속에는 무수한 잠재력이 포함
무한한 힘과 경행 사이에는 불균형이 발생
완전한 생명을 향해 도약하고,
불균형에 기인한 폭발과 도약이 엘랑 비탈

이런 폭발과 물질로 부터의 저항에 의해 생명은
다양하게 진화한다. 생명은 단지 하나의 목적과 방향을 향해서
직선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여러 방향으로 단속적인 진화를 한다.
때문에 생명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인가를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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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대상으로 부터 자신의 행동에 필요한 부분만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부부은 결코 관념으로서의 모습이 아니고 대상 그 자체의 일부이다.

대상 그 자체와 부분과의 차이는, 예를 들면,

(1)눈앞에 있는 컵을 언뜻 본것과

(2)주목해서 본 것과

(3)현미경으로 본 것과의 차이다.

이 세가지 모두 동일한 하나의 컵이 드러내는 모습니다. 여기에는 실재와 관념이라고 하는 질적인 단절은 없다.

이마주는 보는 사람에 의한 심적 영상이 아니라. 물질을 필요한 부분만으로 축소한 것이며,

세계는 무수한 이마주의 총체다. 이마주는 끊임 없이 움직이며 변화한다.

인간의 기억도 이마주고 원소기호도 이마주이며, 우주의 역사도 이컵도 이마주이다.

즉 우리는 이미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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